허심포산(虛心抱山)―류회민의 산(山) 그림 - 2008 원갤러리 초대전 펑론
허심포산(虛心抱山)―류회민의 산(山) 그림
도시 현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에 따른 도시와 거주민의 물리적/심리적 지형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항도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뉴타운 개발, 아파트 재건축 바람이 한창이다. 주상복합건물들이 높이를 다투듯 도처에 경쟁적으로 치솟고 있다. ‘다이내믹 부산’이란 슬로건은 이를 일컬음인가? 이들은 일견 역동적으로 읽혀지기도 하지만, 도시 공공 디자인이라고 하는 큰 틀과 건강한 합의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개발경쟁 시대, 건설사 또는 각 구(區) 단위가 앞 다투어 빚어낸, 인간적 질서가 거세된 차가운 도시 풍경이다.
류회민이 모처럼 신작을 선보인다. 지난 2005년 부산 바다갤러리 개인전 이후 3년 만이다. 그간 다져온 내공이 궁금했다.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작업실에는 묵향(墨香)이 가득했다. 수묵화가 류회민은 산에 빠져 있었다. 수 없이 산을 드나들며 접한 부산의 사소한 것들을 수묵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수 천 년을 지켜온 산자락을 간단히 밀고 올라오는, 산만큼이나 키가 자란 이런저런 건물들의 집합적 위용은 화가 류회민으로 하여금 몸을 던지듯 붓을 던지게 했다. 습관처럼 산을 밟았다. 부산에 살면서 목도한 부산의 물리적/심리적 지형 변화를 부산의 산 그림을 통해 부산하게 담아내기 시작했다.
부산이라는 거대 도시 내에서 삭제되고 생성되는 풍경들을 먹으로 떠내기 시작했다. 눈 내린 겨울산, 비온 후의 제색, 산중턱에 무심한 척 힐끔 드러난 산복도로, 송화가루 날리는 나른한 봄의 기운, 초여름의 유연한 정취, 산꼭대기까지 키가 자란 주상복합건물, 엽록소를 밀어낸 산자락의 아파트들, 한가한 어촌, 햇살 가득한 평화로운 마을 모습 등이 그것이다. 마치 은밀하게 묵간(墨簡)을 써내려가듯, 류회민은 도시 부산의 현대적 풍광을 산을 중심으로, 또는 산을 통해 묵묵히 기록하고 있었다. 부산의 도시 특성과 현재적 지형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산꼭대기에 서보는 일이다. 정상에서 부감(俯瞰)으로 접하는 도시 부산의 파노라마는 가히 압권이다. 부산이 바다의 도시가 아닌 산의 도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류회민은 몸을 수고롭게 하여 산을 오르고 확인하고 담아내고 떠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금정산성(金井山城).종이에 水墨.75X288Cm.2008.부산시립미술관 소장(2008 원갤러리 초대전 출품작)
허심포산(虛心抱山)이라 했다. 마음을 비워야 산을 담는 법. 산을 오르며 류회민은 화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재인식하고 속세에 찌든 마음을 걷잡는다. 도심 외곽에, 때론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 즉 속세에 있으면서도 아직 크게 때 묻지 않은 산을 닮으려 한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산이 류회민에게로 안기는 것인가. 아니면 산의 품에 오롯이 안기니 그의 마음이 비워지는 것인가. 산은 화가 류회민에게 오늘도 마음 비우기를 가르쳐주고 있다. 회사(繪事)는 후소(後素)라 하지 않았던가? 어느 선인의 말처럼 사람은 땅을, 땅의 법칙을 본받아야 하는 가 보다.
현대인들이 좀처럼 시집(詩集)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지적했다. 심지어 도통 시를 읽지도 않는다고 한탄도 했다. 물론 이런 지적에는 ‘일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하지만, 주위를 살펴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대책은 무엇일까. 시절이 그러할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름지기 시인은 시를 더욱더 많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 미술은 경매 등 미술시장(市場)에 힘없이 끌려가고 있다. 이런저런 내로라하는 공간들의 전시도 마찬가지이다. 컬렉터와 화상, 일부 젊은 작가들도 중심을 상실하고 이른바 팔리는 그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 살면서 시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시장이기에 잘 팔리는 인기품목이 있고 팔리지 않는 비인기 품목도 있을 수 있다. 미술시장도 시장인지라,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한다고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최근 시장은 특정 국가와 일부 장르, 경향을 중심으로 과열된 양상을 보인다. 특유의 쏠림현상까지 가세하고 있다. 수묵화든, 채색화든, 먹그림이든 현대한국화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싸늘하다. 고사(枯死) 직전이다. 한국화는 그저 여기(餘技)로만 해야 하는가? 시장이 그러할수록, 세간의 관심이 덜할수록,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수록 작가는 더욱더 작업에 정진해야 겠다. 수묵을 끝까지 고집할 태세인 류회민을 지켜보면서 새삼 그의 작가적 매력과 수묵의 가능성을 확인해본다.
류회민은 아직도/여전히 지필묵을 고집한다. 그것도 수묵풍경만을 고집한다. 1995년 수묵작업으로 전환한 이후 시종일관 채색은 피하고 오로지 수묵으로 먹의 정신성을 구현해 왔다. 주지하다시피, 먹은 본래 단일색이지만 모든 색을 다 함유하고 있다. 질료적(質料的) 성격보다는 정신성이 강한 재료이다. 이 부분이 류회민의 꼬장한 성격과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닐까. 류회민은 성격상 장지를 마다하고 순지와 한지를 주로 사용한다. 그림 속 일부 덧칠이 가해진 부분들이 뭉개져 다소 탁하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때론 윤곽을 무너뜨리거나 그 경계를 더욱 분명히 하면서 삼투하는 산의 질량감은 서정적인 류회민의 묵산(墨山) 기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류회민의 산 그림은, 재주를 부린 그림이 아닌 작가의 가치관, 자연관, 회화관이 효과적으로 배어 있는 독특한 심상일기라 하겠다.
류회민은 이번 전시에서 뒤틀린 진실과 합의로 가득한 현대도시의 물리적/심리적 표정들을 산을 통해 역설적으로 들춰냈다. 그의 그림이 지닌 조형적 측면보다는, 수묵 속에 내포된 작가의 비판 정신을 먹을 따라 들어가 살펴보자. 관념적이지 않은, 우리네 생활 주변의 친숙한 풍광을 담은 15점의 작품들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산 그림 작업을 매력적인 볼거리로 바꿔 놓았다. 작가가 경험한 산과 관객이 알고 있는 산의 기운과 풍광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라 하겠다. 특히 피난시절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자연스런, 다양하고도 인간적인 표정의 골목길과 군락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황령산 기슭의 물만골 그리고 다양한 표정으로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부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금정산 고당봉의 변신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류회민은 오늘도 산에 올라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받아준 산을 품어 안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외로운 산행과 사생에 동행할 동지와 벗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산행과 사생이 작가로서의 류회민 삶에 ‘필살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천남(미술평론)